제목 : 서툴지만, 잘 살고 싶다는 마음
지은이 : 이정현
출판사 : (주)백도씨
초판 발행일 : 2020년 3월

일상수집가 이정현의 시선이 머문 작은 산문집이다. 서툴지만,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제목이 말하듯이, 많은 경험치를 가진 젊은이이지만 아직은 청춘인 이정현이라는 작가의 세번째 산문집이다. 이 책은 나역시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관심을 갖게 된 책이다. 젊지만 삶에 대해서 다양하고 깊은 시각을 가진 이정현 작가의 삶에 대한 투영이 돋보이는 책이다. 인생을 다시 정비해 보고 싶고 좀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다시 읽어 보고 나의 삶을 새롭게 조정해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사람으로 행복하기를
청춘은 시절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라 믿고 싶다.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마음. 움직이는 사람의 오늘은 일생 중 가장 아름답게 피어 있다. 그리고 내일 더 아름다운 곳에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잘 살아 보자고. ( 본문 20 페이지 중에서 인용 )

대화란 때론 과일 껍질을 깎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론 숲을 걷고 산을 오르는 일 같기도 하다. 껍질을 벗기고 과육을 씹는가 하면, 산책로를 걷다가 암벽을 오르기도 한다. 이야기는 천천히 돌고 돌아 서로의 요즘에서 만난다. 이런 사람과의 대화는 마음이 편하다. 이야기에 상대의 공간을 지켜주는 사람. 섣부른 질문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에게서 같은 질문도 펀안하게 들린다. 천천히 껍질을 깍고 산책로를 거닐며 상대를 한걸음 뒤에서 바라본다. ( 본문 28 페이지 중에서 인용 )
사람과 멀어지는 일은 심심찮게 겪으면서도 적응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적응의 대상이 헤어짐이라는 행위가 아닌 헤어지는 사람이어서가 아닐까. 매 이별이 새 이별이라 예행 연습이 없다. 밀어내고 있음을 느끼는데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무엇을 하더라도 닿질 않는다. 나는 당신을 구름으로 보지 않는데 당신은 떠가는 구름이다. 얼굴을 익히고 정을 두터이 하는 것은 둘의 일. 멀어지는 것은 하나의 일. 남겨지는 것도 하나의 일. 사람은 문득 다가오고 문득 멀어진다. 다가올 땐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으면서 떠날 때는 잔뜩 두고 떠난다. 서운하고 미운가 싶더니 이내 안타깝고 아쉽다. 영영 가 버리고 나서는 뒤늦게 미안해하기도 한다.
( 본문 68,69 페이지 중에서 인용 )
사랑이 전부가 아닐 수는 있지만
따뜻한 국물을 들이켜니 비어 있던 속 곳곳이 차는 듯하다. 사랑은 짐을 덜어 주고 빈 곳을 채워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요리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엄마에게 배운 거였나 보다. 고향에 못 내려간 지 오래됐다. 내려가면 같이 장을 보러 가자 하고 싶다.
( 본문 80 페이지 중에서 인용 )

어떻게 생각해요? 어제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런 말을 들었어요. 사랑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왜 그럴까요. 사는데는 사랑말고도 신경써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런데, 삶에 사랑보다도 더 발칙한 이벤트가 있을까요? 세상에 중심 하나가 더 생기는 일이잖아요. 원이 타원이 되어 지나치던 것까지 신경 쓰게 하고, 세상의 몰랐던 것을 바라보게 해 주니까요. 그렇게 다시 원이 될 때까지 둘 사이에 새로운 중심 만들어 가는 일이니까요. ( 본문 92 페이지 중에서 인용 )
지금까지의 긴 이야기가 없어도 단 한 걸음으로 마음에 닿는게 사랑이었어요. 친하다는 말이 이런 걸까 처음 생각한 게 사랑이었거든요. 난데없이 나타나선 허락도 없이 내 옆자리에 않아 있는 사람. 긴장을 늦추고 몸을 기댈 수 있는 사람. 구태여 웃지 않아도, 억지로 울음을 참지 않아도 되는 사람. 가장 친한 친구. 소중한 사람.
( 본문 96 페이지 중에서 인용 )

처음이지만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 있다. 구석구석 익숙한 취향이 맞물리고 날선 마음이 고즈넉해지는 곳. 반짝거리는 곳도 좋지만, 이제는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 더 좋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불확실한 호기심에서 오는 떨림 대신 나를 마음 놓이게 해 주는 사람. 아무 걱정 하나 없이 내 마음을 와르르 풀어놓고 싶어지는. 불안에 떨지 않는 사랑을 하고 싶다. ( 본문 116 페이지 중에서 인용 )
단절에서 오는 애틋함은 생각보다 위태로운 감정이라는 걸 아시나요. 어쩌면 나는 애틋함은 멀고 가까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라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을까요. 나는 그 질문에 멀어지지 말라고 대답하고 싶던 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멀어지지 않아도, 내내 눈을 맞추고 있어도 나는 애틋함을 느끼겠습니다. 희미해지는 당신을 손끝으로 세어가며 홀로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게서 멀어지지 말아주세요. 당신은.
( 본문 164, 165 페이지 중에서 인용 )
나의 일상이 당신의 일상이 되는 일
무언가를 정하고 나아갈 때 초점이 맞춰지면 자칫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신경 쓰지 못한 것은 그저 지나가 버리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초점 밖에서라도 내 곁을 스쳐갔다는 사실이다. 그건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걸오온 발자국과 발뒤꿈치로 흘러들어 고인다. 초점 안의 멀찍한 것이 달라지지 않아 속이 상하려 할 때마다 생각한다. 걸을 때마다 세상은 변한다고. 하물며 골목을 하나꺾어도, 길만 하나 건너도 온 세상이 달라진다고. ( 본문 174, 175 페이지 중에서 인용 )
살아간다는 건,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앞의 길처럼 컴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고개 들면 떠 있는 달을 알고, 걸어온 길을 안다. 한참을 걷고 돌아보니 누군가 쓸데없다고 말한 내 작은 행동이, 그 누군가와는 다른 길로 들어서는 첫 번쨰 발걸음이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를 수도 있겠지만, 가고 싶은 길로 가는 방법은 안다. 무수한 일을 겪으며 살아온 내가 이끌리는 대로 둘 것.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할 것. 그일이 쓸데없지 않다는 걸 믿어 의심치 말것. 그렇게 꾸준히 걸을 것. 밝지 않은 길을 걷는 내가 도착할 곳은 어둡지 않다는 것을 알 것. ( 본문 187,188 페이지 중에서 인용 )
서로 잘 어울린다는 뜻의 조화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닮은 것끼리 맞붙어 어울리는 것. 또 하나는 다른 것끼리 갖다 댔는데도 썩 잘 어울리는 것. 색으로는 유사색과 보색 같은 거다. 나는 그런 조화라는 얄궂은 말이 좋다. 생판 다른 것끼리 어우러져 하나인 양 구는게 신기하고 웃기다. 닮은 것과 다른 것을 나누는 기준은 또 어떻고. 단하나가 닮아도, 달라도 그렇게 불릴 수가 있다. 어찌 보면 조화라는 건 애초에 닮고 달라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모든 게 영 같을 수도 영 다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 본문 190, 191 페이지 중에서 인용 )

더 많이 읽고 떠나 봐야 한다. 속에 더 많은 글자와 생각을 담고 세상을 세밀하게 바라보고 싶다. 여행이란 단지 떠나는 것에서 오는 떨림이 다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발을 딛고 자신이 가진 눈길로 조금씩 알아 가는 것. 누구나 저마다의 여행을 하고 있다. 나는 그 끝에서 무거운 장서를 읽듯이 천천히 삶을 여행하고 싶다. 촘촘한 시선으로 한 사람의 깊은 곳까지 여행하고 싶다. 여행하는 삶도 좋지만, 삶을 여행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떠나지 않아도 떠날 수 있는 사람. 세상을 자세히 사랑 할 수 있는 사람.
( 본문 201, 202 페이지 중에서 인용 )
흐트러져 아름다울 때가 있다. 나름의 균형을 가지고 자신만의 모양으로 흐트러질 줄 아는 것은 아름답다.
( 본문 227 페이지 중에서 인용 )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는 대단하지만 사실 그것만으로 거창하진 않다. 다만 필요한 용기의 무게가 그걸 가늠하게 한다. 그리고 용기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걸 알아서, 그 변화가 나에게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를 알 수 없다는 불안감에서 온다. ( 본문 256 페이지 중에서 인용 )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은 꼭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나누는 대화 같다. 여전히 친숙하지만, 어딘가 달라져 있다. 내가 삶을 살고 변해갈 동안 책도 내가 없는 곳에서 다양한 걸 겪고 돌아온 것 같다. 다시 펼치는 책장에서는 읽지 못했던 것을 읽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낀다. 책뿐만 아니라 영화를 다시 보는 일도 그렇다. 삶의 모든 것이 그렇다. 전날 걸었던 길을 걸어도 어제와 같지 않다. ( 본문 260 페이지 중에서 인용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_멋지게 나이들어가는 인생의 기술 (0) | 2026.02.23 |
|---|---|
|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_장석주 생태 산문집 (1) | 2026.02.03 |
| 태도에 관하여_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0) | 2026.01.02 |
| 모든 요일의 여행_여행..여기서 행복하자 (0) | 2025.12.19 |
|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_버지니아 울프 에세이 (1) | 2025.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