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인성에 비해 잘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현실적인 직업 이야기

skybluereadingbook 2024. 12. 20. 16:36
제목 :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지은이 : 남궁인. 손원평. 이정연. 임현식. 정아은. 천현우. 최유안. 한은형
출판사 : 문학동네
초판 발행일 : 2024년 5월

다양한 직업의 세계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이 책은 월급 사실주의 동인들이 2023년도 부터 펴내고 있는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이야기에 대한 단편 모음으로 그 두번쨰 책이라고 한다. 

 

문학은 좀더 의미있고 심도있는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사상과 의미도 중요하지만 밥벌어 먹고 사는 것도 매우 중요한 부면이다.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것을 통해서 자신과 가족을 부양한다는 것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큰 범주 중 하나이다. 

 

물론 삶의 의미와 바람직한 삶들 향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의식주 해결의 길이 나를 발전시키고 만족 시킬 수 있는 즐거운 일이라면 좋으련만, 많은 경우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보다는 돈을 더 버는 일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선택의 권한이 매우 제한되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전전하게 되며, 그 선택의 폭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학력과 배경으로 인한 다양한 보이지 않는 차별속에서 자신의 밥벌어 먹을 길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떄 월급 사실주의 동인들의 소설집은 나의 흥미를 끈다.  몇편만 간단히 살펴보자.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이라는 말은 인성은 별로이지만 조직에 잘 적응하거나 직업적 스킬이 뛰어나서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에서 볼 떄 잘 나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과 함께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이라는 단편을 먼저 읽어보았다.

 

프렌차이즈 화장품 회사의 영업사원 진영의 일하는 이야기이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프렌차이즈 화장품 회사도 플랫폼 판매 위주로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업 전망이 있거나 없거나 신규 가맹점을 입점시켜야 하고 교육을 시키고 점주들을 독려해서 매출을 이끌어야 한다.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진영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그는 회사에서 배운대로 혹은 선배가 알려준데로 혹은 암기한데로 마치 역할극을 하듯이 새로운 점주를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고 그녀가 판매를 늘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과정에서 그가 자각하고 있는 본사의 현실을 점주에게 그대로 전달 할 수 없다.  그는 회사의 대표자로 온것이며, 점주에게는 다소 환상적이고 긍정적인 시야를 주어야만한다.  사실 그의 현실이 계속적으로 파괴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자신도 곧 어떤 다른 선택을 하게 될 지 모르지만 그는 어쨋든 점주에게 담당 영업사원으로서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비슷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의 내면의 의지와는 다소 배치되더라도 회사가 원하는 방향 그리고 매출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일해야 한다.  때로는 내가 로보트나 앵무새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앵무새가 되지 않기 위해서 당장 회사를 뛰쳐 나올 용기는 없었다.  밥 벌어먹고 살기는 힘들다.  아마도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가 아닌가 한다.

 

 

피아노

 

장편소설 아몬드로 유명한 작가 손원평의 짧지만 생각을 많이하게 하는 단편이 피아노 이다.  공부방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혜심은 이사를 준비하면서 소소한 문제를 직면하게 된다. 

 

몇년동안 공부방에서 가르치던 순수하고 착한 준용이를 혜심은 더이상 돌볼 수가 없다.  부모들이 더이상 학습비 송금을 하지 않을 뿐더러 이미 몇개월치가 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공부방으로 찾아오는 준용이에게 매몰차게 대하지 못하고 잠깐씩의 쉬어감을 허락한다.  그렇다고 정성을 다해 가르치지도 않는다.  

 

순수한 아이와 돌봄노동이라는 것의 한계는 금전적인 문제였다.  스승이라면 당연히 자신을 찾는 아이를 돌보아야 하지만 금전과 노동의 문제에서는 그 아이의 순수함을 모른척 내쳐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꼇던 피아노를 중고거래사이트에서 판매하고자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가격에 구매하고자 하는 이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치게 되고, 그냥 아파트 공터에 무료 나눔으로 내어 놓는다. 그리고나서 피아노 의자안에 넣어둔 약간의 돈과 그동안 공부방 아이들에게서 받은 감사의 카드와 편지가 생각나서 즉시 피아노를 찾으려고 하지만 이미 없어진 후이다. 

 

답답한 마음으로 다시 중고거래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왠걸, 자신의 피아노임에 틀림없는 피아노를 팔겠다고 올린 사람이 있다.   어이가 없다.  무료나눔을 받아 중고로 판매한다는 뻔뻔한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이야.  혜심은 1만원의 선금을 내고 그 집을 찾아가 다짜고짜 그 피아노가 자신의 것임을 확인하고 주인의 사과를 듣고 피아노를 돌려 받을 수 있게 되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의자는 없었다고 피아노만 있었다고 말한다.  당황스럽다.  의자 때문에 온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 때 그 집앞에서 준용을 만나게 된다. 

 

준용이는 선생님이 버린 피아노와 의자를 집으로 들고 왔고 준용이의 엄마가 피아노를 팔고자 했던 것이다.  다행히 혜심은 준용이가 버려둔 의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사가기 전까지만이라도 준용이를 받아들인다.  방과후에 오는 준용이에게 책을 피라고 하고 가르침과 돌봄을 준다.  

 

씁쓸하지만 따뜻한 이야기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공부방 선생님들의 딜레마를 잘 그려냈다.  돈을 위해 일하는 것은 맞지만 어느새 아이들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엄마의 송금 없이는 사랑하는 아이들을 돌볼 수 없다.  현실적인 딜레마이다.  우리가 노동을 하면서 겪게 되는 딜레마는 정말 다양한데, 순수한 아이와 다소 순수성을 잃어가는 어른의 마음이 잘 대비 된 소설이다.

 

 

이 외에도 다른소설들속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수습직원과 정직원 그리고 코인 투자와 물류알바 등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밥벌이에 대한 짧고 흥미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행복하게 일하고 싶은 나로서는 이렇게 우리가 사는 직업의 현실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들이 있어서 진짜 고맙고 반갑다.